"위대한 가수 만드는 건 목소리가 아니라 심장"
'사랑의 기쁨' '하얀 손수건' 등 숱한 히트곡
매년 100회이상씩 공연… 20일 고별 내한 공연
"눈물을 잃으면 가수는 끝난 거나 마찬가지"라고 가수 나나 무스쿠리(Nana Mouskouri·73)가 말했다. 파리의 자택에서 전화를 받은 그녀의 목소리는 젊은 날처럼 높고 곱고 가늘지 않았다. 대신 따뜻하고 소탈했다.
역사상 가장 음반이 많이 팔린 여자 가수 중 하나로 꼽히는 무스쿠리는 고향 그리스의 억양이 감도는 영어로 "위대한 가수를 만드는 것은 목소리가 아니라 심장(heart)"이라고 했고, "아직 고음을 낼 수 있을 때 팬들과 작별하고 싶어 오는 7월 은퇴한다"고 했다.
▲ 오는 7월 은퇴를 앞두고 이달 20~26일 고별 내한 공연을 하는 그리스 출신 가수 나나 무스쿠리가 자서전‘박쥐의 딸’을 냈다. ‘박쥐’는 그녀의 고향 사람들이 가난한 노름꾼인 무스쿠리의 아버지를 얕잡아 부르던 별명이다. /루드비히하펜(독일)=게티 이미지 |
◆ 노름꾼 영사기사의 딸로 태어나
그리스 크레테 섬에서 가난한 영사기사의 딸로 태어난 무스쿠리는 유럽과 미국에 차례로 진출해 수백 장의 음반을 내며 세계적인 가수가 됐다. 지난주에 나온 자서전 '박쥐의 딸'(원제 La fille de la chauve-souris·문학세계사)이 그녀의 고독과 영광의 기록이다.
"지난 50년간 해마다 100회 넘게 공연을 했어요. 같은 노래를 1000번 불러도 부를 때마다 단어 하나하나를 온전히 느끼면서 불러야 관객이 울어요. 그래서 개인사가 불행했던 사람이 전설적인 가수가 되는 경우가 많은지 모르지요. 저도 슬픔과 고독에 익숙했어요. 아버지는 노름을 했고, 나치 독일이 그리스를 점령하자 레지스탕스가 됐지요."
아버지는 간간이 남몰래 집에 들렀다. 어머니가 먹고 살 게 없다고 푸념하자 극장 의자를 팔아 돈을 마련해주고 다시 떠났다. 극장주 겸 집주인이 노발대발하며 일가를 셋집에서 쫓아냈다. 일가는 당나귀가 끄는 수레에 이삿짐을 싣고 지인이 마련해준 단칸방으로 옮겼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불행은 계속됐다. 아버지는 노름을 끊지 못했다. 그 와중에도 무스쿠리와 언니는 음악 학교에 다녔다.
◆ "전 뚱뚱했고 목소리도 불안정했어요."
"언니가 노래도 더 잘하고 얼굴도 더 예뻤어요. 전 못생기고 뚱뚱한데다 목소리가 불안정했지요. 어느 날 엄마가 '둘 다 가르칠 능력이 안되니 네가 포기하라'고 했어요. 노래를 못 한다고 생각하니 죽고만 싶었지요. 그에 비해 언니는 그렇게 노래를 잘하면서도 '난 그냥 시집 가도 괜찮은데' 했고요. 사정을 들은 선생님이 '언니보다 동생이 더 좋은 가수가 될 것'이라며 제 학비를 면제해줬어요."
가난이 유일한 시련은 아니었다. 무스쿠리는 2차 대전 직후에 10대를 보냈다. 거칠고 누추한 시대였다. 미군과 함께 라디오와 LP판이 들어왔다. 그녀는 엘라 피츠제럴드, 빌리 할리데이 같은 미국 재즈 가수의 노래에 빠져들었다. 음악학교에 다니면서 남몰래 대중 가요를 부르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들켜서 퇴학 당했다.
1959년~60년 그리스 가요제에서 2회 연속 우승하면서 그녀의 인생이 달라졌다. 가요제를 지켜본 프랑스의 거물 프로듀서가 그녀를 유럽 무대에 소개했다. 무스쿠리는 이어 미국에 진출했고 '사랑의 기쁨'(Plaisir d'amour), '오버 앤 오버'(Over and over) 등 숱한 히트곡을 불렀다. 그녀의 음반은 지금까지 2억장 이상 팔렸다. 남녀 솔로와 그룹을 통 털어 역사상 16번째, 여자 솔로 중 네 번째이다.
◆ 한해 100회 이상 공연, 호텔에서 일생 보내
"도시에서 도시로, 무대에서 무대로, 호텔에서 호텔로 이동하는 인생이었죠. 남들은 화려하다고 했지만 밤늦게 공연을 마치고 호텔에 돌아오면 네 벽 사이 텅 빈 공간에 앉아있는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졌어요. 그래도 다음날이 되면 또 노래하고 싶은 욕망이 치솟았지요."
무스쿠리는 "나는 평생 노래를 통해 타인을 웃기고 울리고 이해했다"고 말했다. "어떤 가수들은 '나는 클래식 가수', '나는 재즈 가수' 하고 특정 장르에 집착해요. '나는 음악성 있는 가수'라고 잘난 척 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저는 어렵게 자란 소박한 사람이에요. 관객만 있다면 그가 왕이건 행인이건, 클래식이건 대중가요건 가리지 않았어요."
그녀는 1974년 첫 남편과 이혼한 뒤 30년 가까이 아들(40), 딸(38)을 키우며 혼자 살다가 예순 아홉 살 되던 2003년에 평생지기인 음악감독 앙드레 샤펠과 결혼했다. 둘은 1960년대 초 음향기사와 신참 가수로 만났다. 오랜 세월 함께 일하며 상대방이 이혼의 좌절을 딛고 일어서도록 격려한 다음, 쉰을 넘긴 나이에 연인이 되고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부부가 된 것이다.
◆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하얀 손수건'
무스쿠리는 스위스, 프랑스, 그리스를 오가며 산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묻자 "여러 노래가 좋지만 나 혼자 있을 때 즐겨 흥얼거리는 노래는 역시 그리스 민요인 '하얀 손수건'"이라며 "그 노래를 한국 팬들이 좋아해줘서 기쁘고 신기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무스쿠리는 20~26일 서울·성남·대구·창원·부산을 돌며 다섯 차례 고별 내한 공연을 한다. 오는 7월 은퇴한 뒤에는 "아주 가끔, 꼭 부르고 싶은 자리에서만 한 곡씩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젠 느긋하게 '엄마'로 살아볼래요. 두 아이를 낳고도 공연 다니느라 다른 엄마들처럼 아이들과 부대끼며 살지 못했거든요."
2008/1/14
조선일보
김수혜 기자 goodluc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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