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이룬 명문고, 오직 주님 은혜
“안산 동산고등학교 학생들은 신실한 믿음을 바탕으로, 미래 핵심 인재를 양성하는 독창적 학교 시스템 속에서 경쟁력 있는 인재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공단 도시이며 신앙과 교육의 불모지였던 수도권의 변두리 안산에 뜨거운 믿음과 학구열을 불러일으키며 불과 십 년 만에 명문고 반열에 오르는 기적을 이루어 낸 안산 동산고의 신화, 그 비결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 감사함을 함께 나누기 위해 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2005학년도 졸업생 570명 중 서울대 22명, 연세대 62명, 고려대 53명을 합격시켜 대학 진학률 전국 5위권이란 쾌거의 비결을 이 책에 공개했습니다.”
최근 <안산 동산고 이야기>(두란노)를 출간한 김인중 목사(안산 동산고등학교 이사장, 안산 동산교회 담임 목사)는 “가고 싶은 학교, 머물고 싶은 교실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서 “행복과 입시를 모두 잡은 학교로 알려져 학생들과 부모들에게 희망을 전했다는 점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입시와 학교생활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학교를 설립하도록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왕따’가 없는 학교, 술 먹고 담배 피우는 비행 청소년이 없는 학교, 교내에서 학생들이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는 학교, 체벌하는 선생님이 없는 학교, ‘촌지’가 없는 학교, 학생도 선생도 부정행위를 하지 않는 학교, 그러면서도 공부는 절대 뒤지지 않는 학교가 바로 안산 동산고등학교”라며 “만나면 서로 따스한 미소를 주고받는 사람들, 마주치는 누구에게나 공손히 인사하는 사람들, 야단치고 싸우는 대신 먼저 대화하는 사람들, 칭찬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바로 안산 동산고등학교의 학생과 교사들”이라고 설명했다.
이 책의 특징과 관련해 김 목사는 “대한민국 모든 부모와 정부의 최대 고민인 교육 문제를 탁월하게 해결한 모델을 보여 줄뿐만 아니라 올바른 성경적 교육 철학과 미션 스쿨이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했다”며 “교사, 학생, 학부모 등의 솔직한 증언을 통해 행복한 학교 동산고의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덕과 실력을 갖춘 바람직한 교사상을 찾아볼 수 있다”고 소개했다.
김 목사는 안산 동산고등학교와 관련해 "애초 건축할 때부터 미리 최첨단의 인터넷 망을 깔아 컴퓨터와 방송 장비를 갖추어 놓았고, 수업 중에는 휴대폰이 휴(休)대폰이 될 수 있도록 수신자 부담의 공중전화를 설치했다"고 말했다. "비가 오더라도 운동을 할 수 있는 우레탄 운동장, 수영장, 체력 단련실 등의 스포츠 시설이 있습니다. 전국에서 최초로 고등학교 급식 시설을 갖추어 놓고, 한 끼 1,500원에 양질의 식사를 기숙생이 아니더라도 원하는 사람은 하루 세 끼를 다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아침을 학교에 와서 먹을 수 있으므로 교사와 학생 모두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쁩니다"
또한 "동산고등학교의 교사들은 100% 세례 교인으로서 교육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쳐 학생들의 마음을 살피며, 헌신과 눈물로 기도한다"며 교사들을 자랑스러워 했다.
이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개교 초기의 시행착오를 다룬 제1장 ‘희망으로 낚은 열매’를 비롯해 동산고가 설립되기까지를 소개한 ‘작은 자들이 품은 큰 꿈’, 동산고의 교육방식을 다룬 ‘또 하나가 아닌, 하나뿐인 학교’, 동산고가 무엇이 다른가를 보여준 ‘가고 싶은 학교, 머물고 싶은 교실’ 제자사랑, 스승사랑의 장을 펼친 ‘여기는 청소년 청정 구역’, 마지막으로 동산고 사람들의 이야기 ‘학생도, 부모도 좋아하는 학교’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 책은 초,중,고생 자녀를 둔 학부모와 고입과 대입을 앞둔 중,고생, 참 교육을 위해 고민하는 일선 교사, 교육계 관련 종사자, 미션 스쿨을 운영하거나 미션 스쿨에 대한 비전을 가진 크리스천에게 적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 소개된 동산고 1기 졸업생의 글 <나는 일진회 ‘짱’이었다>를 소개한다.
나는 중학교 때까지 소위 말하는 일진회 ‘짱’이었다. 어머니는 믿음이 좋은 분이셨고 나는 유년시절에 어머니를 따라 여의도에 있는 유명한 교회에 몇 번 가긴 했지만 그 뒤로는 나가지 않았다. 그런 나를 어머니는 어떻게 해보지 못하셨다. 어머니 말만 듣지 않은 게 아니고 선생님이 때리거나 하면 같이 맞섰고 끝까지 대들었다. 초등학교 때도 소문난 싸움꾼이어서 나를 당해낼 사람이 없었다. 그런 나를 친구들은 우리 학교의 ‘짱’이라고 부르며 알아서 대접해 주었다.
초등학교를 그렇게 보내고 나니까 중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선배들이 나에게 일진회에 들어오라고 했고 나는 가입했다. 중학교 때에는 더욱 극성스럽게 싸웠다. 싸움꾼으로서는 그때가 나의 전성기였다. 집에 있는 날보다 나가서 ‘활동’한 날이 더 많았다. 나는 중학교 시절 다른 데서 살았는데 주로 여기 안산에 와서 놀았다. 이곳은 그 당시 치안이 좋지 않았으므로 우리 같은 애들이 모이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우리 패거리들은 대부분 실업고에 진학했다. 나도 안양에 있는 공고에 진학했지만, 공부에 흥미를 붙이지 못한 나는 1학년 때 일단 휴학을 했다. 학교 다닐 때는 몰랐는데 집에 있으니까 같이 놀 사람이 없는 게 제일 큰 고통이었다. 아무 곳에도 갈 곳이 없는 사람에게 자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동안 집은 많이 나갔다 들어왔다 했지만 그건 중학교 때 얘기고, 그때는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것 정도는 터득한 나이였다. 친구들이 모두 학교에 간 시간에 혼자가 된 나는 여기저기 쏘다녔다. 그러자 일진회도 재미가 없어졌다. 게임방도 없었고 갈 곳이 없었는데 일진회 선배들에게서 자꾸 연락이 왔다. 선배들한테 당할 게 두려워서 정식으로 일진회를 탈퇴하지는 못하고 피해 다니기만 했다. 그 생활은 무척이나 힘들었다. 쫓기는 생활은 무서움과 두려움을 동반했다. 앞길이 보이지 않았다. 늘 햇빛을 보지 않고 밤에만 돌아다녔는데 나중에는 두려움이 극에 달했다. 내 인생이 여기서 막 내릴 수 있겠구나 싶었다. 이러다 결국 내가 자살하고 말지 하는 절망감이 엄습해 왔다.
그런 어느 날, 이곳엘 와 봤는데 공사를 하고 있었다. 기독교 학교가 생길 거란 얘기를 현장에서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자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다시 학교에 가고 싶어졌다. 기독교 학교라는 그 자체 하나만으로 가고 싶었던 거다. 그땐 신앙이 없었는데도 그랬다. 내가 이 학교를 온다면 달라질 수 있을까? 그러면서 어머니 생각도 났다. 어머니는 교회의 구역장까지 했는데 내가 그렇게 되고 나니 중도에 신앙생활마저 포기하셨다. 뒤늦게 어머니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기독교 학교가 생긴다? 내가 예수 믿는 학생이 된다? 이렇게 자꾸 생각하니까 기분이 가뿐해졌다. 구체적으로 새로운 삶을 계획하고 나니까 두려운 그림자가 걷혔다. 새 삶을 살아보자고 스스로 독려했다. 그러나 입학시험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만 마음먹은 쪽으로 길이 열릴 것이고 내 실력을 아는 나로서는 사실 자신이 없었다. 새로운 각오를 다져 먹고 재수 학원 종합반에 등록을 했다. 그런데 정확히 3일 만에 나는 학원 교무실로 불려갔다. “미안하다. 애들이 너 무서워서 안 나오겠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정중하게 학원비를 돌려줬다. 굉장한 분노가 일었다. 학원 선생님들을 다 두들겨 패고 엎어 버리고 싶었다(그때까지도 내가 뭘 잘못했는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나는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 처음에는 책상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차츰 책을 잡는 습관이 배어서 이제 공부 좀 해볼까 하는데 시험 기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모의고사를 봤더니 106점 가량 나왔다. 중학교 선생님들이 동산고에 원서를 써 주지 않았다. 중학교 때 일진회 생활을 한 게 다였고 모의고사도 그 정도니 당연했다. 나는 꼭 가고 싶다고, 시험을 보고 싶다고 사정하여 결국에는 원서에 도장을 받았다.
나는 원서를 접수하면서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이 진짜 계시면 나를 이곳에 오게 해 달라. 안 되면 난 갈 데가 한 군데밖에 없다. 하나님이 잘 아시지 않느냐. 학교만 붙여주시면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고 교회에 열심히 나가겠다.” 이 기도를 입시 때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했다.
국어는 그래도 열심히 읽어 가면서 시험을 쳤고, 나머지 과목은 다 찍었다. 그런데 합격이었다. 그러나 나는 약속을 이행하지 못했다. 내가 왕년에 일진회 짱이었는데 교회를 나가는 게 선뜻 내키지 않았다. 군림하고 싶었던 건 아니고, 내가 그동안 갖고 있던 이미지가 걸림돌이 되었던 것이다. 내가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 나를 아는 사람들이 비웃을 것만 같아 자꾸 주저하게 되었다.
그러나 차츰 선생님들의 훈화 말씀에 감동을 받게 되어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고 경건한 학급 분위기에 나는 저절로 과거의 생활을 뉘우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 1기, 동기들 한테 빚진 바가 크다. 그들은 다정하고 의리가 깊었으며 친구를 감싸줄 줄 아는 포용력을 지녔다. 그런 동기들과의 신의를 저버릴 수 없었고 선생님들의 사랑이 너무도 감사해서 학교생활에 충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산고에 와서 2년 동안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3학년 때 딱 한 번 결석을 하는 사고가 생겼는데 그 해에는 풍진이 대 유행이어서 거의 모든 학생이 결석을 했다. 그때 딱 하루 결석을 했고 그로 인해서 개근상을 못 받은 것이 지금도 유감으로 남는다.
동산고를 들어오기 전과 들어오고 나서의 내 생활은 천양지차다. 동산고 3년, 그 견딤의 세월이 면역기가 되어 그 이후의 사회생활도 무리 없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법무사 사무실에서 일한다. 그리고 전임 사역자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로 교회에서 봉사하고 있다. 나는 동산고에서 평생을 같이할 만한 친구들을 얻었다. 그리고 단순히 고등학교의 학력을 인정받고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을 이수한 것이 아니라 인생을 준비하고 설계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세상의 한 모퉁이를 닦고 쓸며 내게 맡겨진 소임을 다하려고 한다. 이렇게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담임선생님을 뵈러 스승의 날을 맞아 오늘 학교에 왔다. 어려운 시절 날 이끌어 주고 보듬어 주신 김준 담임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교회와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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