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예화

옥합을 깨뜨린 두 자매

하마사 2018. 5. 10. 07:15



지난달 6일 아침 김영애 권사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김 권사님은 한동대 김영길 명예총장의 부인이며, 베스트셀러인 ‘갈대상자’의 저자이기도 하다. 김 권사님은 그날 오후에 두 분의 권사님을 꼭 뵙고 함께 기도해주면 좋겠다고 부탁하셨다.

하얀 머리를 단정하게 커트한 85세 된 권사님이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올린 72세 된 사촌 여동생과 함께 나타나셨다. 영적 기품이 느껴지는 분들이었다. 이분들의 사연은 한인 이민자들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저희는 사촌인데 1975년 미국으로 함께 이민을 갔습니다. 전화 한 통 겨우 할 수 있는 동전이 전부였어요. 마중 나온 지인은 우리를 봉제공장으로 안내했어요. 봉제공장에서 도시락 하나로 하루 끼니를 해결하고 종일 물로 허기를 달래면서, 오후에는 간식으로 나오는 눈썹만큼 얇은 멜론 한 조각을 껍질째 다 먹었지요. 일한 만큼 월급을 많이 받으니까 하루에 2∼3시간 자고 죽기 살기로 일만 했어요.

그러다 이듬해에 제가 결국 과로로 쓰러져 입원을 했어요. 그때가 40대 초반이었는데 병이 난 거지요. 영양실조였어요. 동생은 미용학교에서 기술을 배워 미용실을 냈지요. 우리가 피땀 흘려 번 돈으로 미국에서 처음으로 집도 샀어요. 그런데 어느 날, 이렇게 살다가 하늘나라에 가면 하나님이 ‘넌 재봉틀만 돌리다 왔구나’ 하실 것 같았어요.

그날로 우리 자매는 선교사로 헌신하기로 했어요. 우리는 말이 통하는 조국에서 섬기기로 했어요. 교회의 어느 장로님은 한국 가는데 무슨 선교사냐며 반대했지만, 목사님은 한국도 선교지라며 우리를 파송해 주셨어요.”

두 분은 한국의 한 요양기관에서 18년 동안 자비량으로 봉사했다. 이제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미국으로 돌아가는 여정에서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됐다. 그것은 평생 피땀 흘려 모은 전 재산을 한동대학교에 기증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저희가 살던 미국 집을 팔아 오래전 서울에 아파트를 샀었는데, 그 아파트 한 채와 평생 모은 돈 6억5000만원과 29만5000달러입니다. 이 전 재산을 한동대에 기부하겠습니다. 저희들의 눈물과 땀을 한동에 심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싹 틔우시고 가지를 무성케 하셔서 많은 젊은 청년들에게 열매 맺게 하시면 그보다 더 큰 보람이 또 있을까요.”

지난해 말, 두 분은 미국에서 뜻밖의 기쁜 소식을 듣게 됐다. 7년 전에 신청했던 정부 지원 노인복지 아파트 입주가 최종 승인됐다는 것이다.

“저희는 노후 걱정 안 합니다. 미국 돌아가면 하나님이 다 주시는데요. 100원 주시면 100원 쓰고, 50원 주시면 50원 쓰면 돼요. 절약 생활은 몸에 뱄습니다. 행여 노숙인이 된다 해도 하나님이 먹여 살리실 테니 걱정 없어요.

처음엔 이 가운데 얼마를 미국 갈 때 필요한 물건을 좀 사서 갈까도 생각했어요. 그런데 주님은 ‘나는 네 쓸 것을 다 준비해 뒀다’고 하셨습니다. 마침 그때 저는 사도행전을 읽다가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야기에 마음이 탁 부딪쳤어요. 동생도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러 자기 방으로 들어갔는데, 신기하게도 하나님이 동시에 같은 마음을 주셨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다 드리기로 했습니다.”

언니 권사님은 말씀하는 내내 힘들고 고단했던 삶이 스친듯 계속 눈시울을 닦았다. 두 분의 고백을 듣고 함께 기도하는 나의 목소리는 떨릴 수밖에 없었다. 목이 메어 기도가 나오지 않았다. “하나님! 옥합을 깨뜨린 두 권사님을 축복해 주옵소서. 이 딸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소서. 이들의 일생을 지켜 주옵소서!”

함께 두 분의 고백을 듣고 기도한 김영애 권사님께 이렇게 부탁드렸다.

“권사님, 저와 우리 한동인들이 이 아름다운 교훈을 배우기를 원합니다. 돈이 우상이 되어 버린 이 시대에 ‘돈 벌어서 남 주자, 공부해서 남 주자’고 외치는 한동인들에게 산증인의 모습을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분 이름을 밝히지 않을 테니 제가 이 이야기를 기록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세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기를 간청하는 두 분의 뜻에도 불구하고 부득이 이 귀한 이야기를 지면을 통해 알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헌신을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기념하도록 하신 예수님의 마음이라고 생각해서다.

옥합을 깨뜨린 두 분의 귀한 헌신을 묵상하면서 두 분처럼 싱글로 조선인들을 섬기다 영양실조로 돌아가신 서서평 선교사님의 인생 모토를 다시 떠올리게 됐다.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Not Success, But Service).’

이재훈(온누리교회 담임목사)


-국민일보, 2018/5/8

'설교 > 예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아티투도(행복)의 의미  (0) 2018.05.11
오늘 드리십시오  (0) 2018.05.10
백조가 된 안데르센  (0) 2018.05.09
나는 누구인가  (0) 2018.05.03
긍정의 힘  (0) 2018.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