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테니스계는 정현(19)이란 대형 유망주의 등장으로 들떠 있다. 2년 전 윔블던 주니어대회에서 남자단식 준우승으로 돌풍을 일으켰던 그는 세계 랭킹을 69위까지 끌어올려 윔블던 본선 무대를 예약했다. 프랑스오픈도 예선을 통과해 본선에 진출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 선수가 그랜드슬램 본선 무대를 밟는 것은 이형택(39·최고 세계 랭킹 36위) 이후 7년 만이다. 정현은 최근 키도 쑥쑥 자라 '테니스의 황제'라고 불리는 로저 페더러(스위스)처럼 186㎝가 됐다. 약점으로 꼽히는 서브 능력을 보완하면 한국 테니스의 한계를 넘어설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정현은 한국 스포츠의 세계무대 도전사 가운데 가장 초라한 이력을 지닌 테니스계의 애절함이 빚어낸 재목이다. 그는 고교 테니스 감독인 아버지와 테니스 선수인 형이 있는 테니스 집안 출신이다. 일찌감치 세계적 스타의 산실로 불리는 미국의 닉 볼리테리 아카데미에서 배울 기회도 있었다. 올해 테니스팀을 해체한 삼성증권도 정현에 대해서는 개인 후원을 계속하기로 했다.
유럽과 미국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테니스는 최근 아시아 선수들의 약진에 주목하고 있다. 중국의 리나가 프랑스오픈(2011년)과 호주오픈(2014년) 여자단식에서 우승했고, 일본의 니시코리 게이는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지난해 US오픈 남자단식 결승에 진출하며 한때 세계 랭킹 4위까지 올랐다.
테니스에서는 작은 키인 178㎝인데도 세계적 스타로 성장한 니시코리는 일본의 흥미로운 개혁 프로그램을 통해 태어났다. 윔블던 8강에 올랐던 마쓰오카 슈조(최고 세계 랭킹 46위)가 1998년 은퇴하자 그를 능가하는 선수를 키우겠다는 '프로젝트 45'가 가동됐다. 당시 일본테니스협회장이었던 모리타 마사아키가 형인 소니의 창립자 모리타 아키오 회장과 함께 1999년 '모리타 테니스 펀드'를 만들어 14세 이하 유망주를 미국 유명 테니스 아카데미에서 훈련받도록 했다. 국내에 안주하려는 '일본물'이 들기 전에 새로운 싹을 아예 선진국 토양에 옮겨심겠다는 '자기 부정을 통한 혁신'이란 발상이었다. 니시코리는 지난 1월 타임지 아시아판의 커버 스토리 주인공이 됐다. 그는 "문화적으로 아시아인은 미국인처럼 자신감을 갖고 있지 않다"며 "미국에서 오래 지낸 게 나를 다른 사람으로 바꿔 놓았다"고 했다. 한 박자 빠른 스트로크에 상대의 빈틈을 비수처럼 파고드는 야성적인 플레이 스타일이 미국 생활을 통해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일본과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저변과 인프라가 약한 한국 테니스도 주원홍 현 협회장이 지도자 시절 박성희·조윤정·이형택 등을 발굴해 세계의 벽을 두드리며 조금씩 근육을 키웠다. 정현에게는 이형택의 코치였던 윤용일 코치가 전담 코치를 하고 있고, 현역을 마치고 유학을 통해 박사가 돼 돌아온 박성희가 멘털 트레이닝을 돕는다.
이형택도 열심히 자신의 노하우를 전한다. 지난 30년간 세계와 부딪치며 느꼈던 한국 테니스의 아쉬움과 헝그리 정신이 정현의 자양분인 셈이다. 또다시 열악한 환경에서 용(龍)이 나오기를 바라는 한국 스포츠 현실이 안타깝긴 하지만 정현이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조선일보, 2015/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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