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관련자료/기독교자료

열린 교회에 성역없다

하마사 2011. 1. 20. 17:02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불미스러운 교회엔 공통점…
카리스마 지도자가 종교 권력으로 성역 쌓고
종교재벌이 비즈니스하듯 호화 성전, 교회 세습…
교회 자정운동을 촉구한다

등록 교인 7만명, 출석 교인 4만명을 자랑하는 강남의 초대형 교회인 소망교회에서 지난 2일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다. 일요일 첫 예배가 끝난 직후 담임목사실에서 담임목사와 부목사들 사이에 폭력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경찰은 담임목사와 갈등을 빚어온 두 사람의 부목사가 담임목사를 폭행한 것으로 보고 그 중 한사람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기각됐다. 이들 부목사는 퇴임한 원로목사의 측근으로 알려졌다. 신도가 만명에 가까운 분당의 J교회에서는 6억원의 연봉을 받는 담임목사의 방만한 재정 운영 등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최근 목사가 사임서를 제출했다.

서울 서남권 최대 교회 중 하나인 목동 J교회 목사는 32억6000만원의 교회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작년 11월 말 서울 남부지검에 의해 불구속 기소되었다. 이 교회에서는 장로들이 목사를 검찰에 고발하고 목사는 장로들을 교회에서 쫓아냈다.

이것이 한국 교회 일각의 풍경이다. 세계 50대 교회의 절반이 넘는 메가 처치(mega church)를 보유한 '개신교 신흥강국' 대한민국의 현실인 것이다. 의식 있는 교인들조차 당혹스러워하는 이런 추태에 일반시민들이 냉소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압축 성장의 근대화 과정에서 마음이 다치고 영혼이 상한 수많은 사람들을 인도하던 기독교의 영적 힘은 어디로 갔는가? 세상의 타락과 불의에 맞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할 믿음의 사람들은 왜 침묵하는가? 물론 우리는 이런 질문 자체가 지나친 것임을 안다. 겸허한 자세로 낮은 곳에서 헌신하는 성직자와 최저임금도 안 되는 박봉을 마다하지 않는 교역자들이 삶의 현장을 묵묵히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각자 서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신도들이 엄존하는 건 물론이다.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한 교회에는 공통점이 있다. 작은 개척교회에서 시작해 오늘의 대형 교회를 만든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있는 게 보통이다. 창립자가 무에서 유를 만들었다는 명성을 누리고 무소불위의 종교적 후광이 더해지면서 부패가 시작된다. 목회자 자신이 종교 권력이 되어 성역화하면서 교회 안의 비판을 불온시한다. 신도 수의 과다가 목사의 능력으로 여겨지는 성장물량주의가 압도하면서 대형 교회 자체가 종교재벌화된다. 엄청난 이권이 걸린 종교 비즈니스의 현장에서는 다툼과 추문이 그치지 않는다. 초호화 성전 건립 경쟁이나 교회 세습은 그 결과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지만 교리의 차이를 넘어 공통의 가르침이 존재한다. 아집(我執)의 껍질을 깨트려야 진정한 믿음이 시작된다는 교훈이다. 진실한 신앙은 믿는 자에게 소아(小我)를 넘어 대아(大我)에 이르는 길을 가리킨다. 이런 가르침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은 나의 욕심보다 예수의 뜻인 헌신과 겸손을 앞세워야 한다는 것이 될 터이다. 이기적인 욕망의 철벽에 갇혀 있는 인간으로서는 지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여기서 성직자와 신앙인을 괴롭히는 위선의 문제가 발생한다. 아름다운 말과 비루한 행동 사이의 괴리가 그것이다. 일부 대형 교회에서 들려오는 추문은 그 극점을 보여준다.

특정한 제도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도 삶의 궁극적 의미에 생각이 미칠 때가 있다. 이는 인간성 안에 깊이 자리한 종교적 지향성을 보여준다. 역사 속의 다양한 종교들은 그런 의미 지향성이 특수한 문화의 옷을 입고 표현되는 경우일 것이다. 인간에게 내재한 종교적 지향성을 고양시키기는커녕 훼손하는 제도종교나 싸움질을 일삼으면서 자신만을 위한 권세의 성을 높이 쌓는 성직자는 참된 믿음을 갈망하는 우리의 마음을 파괴한다. 사랑과 겸양 대신 욕망과 권력 다툼이 판치는 호화 성전에 재림 예수가 찾아오겠는가.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의 어깨를 도닥거려야 할 교회가 오히려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는 풍경은 서글프다. 낮은 곳에 임하는 대신 종교귀족이 되어 높은 곳에 군림하는 성직자의 얼굴은 반(反)성서적이다.

비판과 합리성이 통용되지 않는 조직은 타락하기 마련이며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성역을 허용하는 사회는 닫힌 사회다. 열린 교회는 성직자를 특권화하지 않으며 시민적 합리성을 수용한다. 세속의 평균적 도덕성과 합리성에도 이르지 못하는 교회가 열린 교회일 순 없다. 종교권력을 통제하고 투명한 재정 운용을 가능케 할 한국 교회의 일대(一大) 자정운동을 촉구한다.

 

-조선일보, 201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