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테니스

이규태 코너, 테니스 코리아

하마사 2012. 6. 23. 22:00
▼ 다음은 2000년 9월 8일자 조선일보의 이규태 코너에 '테니스 코리아'란 제목으로 실린 칼럼이다. 한국 테니스사를 잘 요약해 둔 것이라 게재한다. 한국 테니스사의 시작이 다르나 현재로서는 어느 것이 정확한 지를 확인할 수가 없다.

[이규태 코너] 테니스 코리아

이형택 군의 US오픈 국제대회 16강 진출은 테니스가 들어온 지 백 십수년 만의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에 테니스를 들여온 것은 미국 초대공사인 푸트로 갑신정변(1884)이 일어나기 이전에 미 공사관 직원과 개화파 인사들 간에 친선경기가 있었다.

국내외 인사들의 사교장이던 정동구락부에는 테니스 코트가 마련돼 있어 외국인 남녀의 시합이 있어 행인들의 구경거리가 됐었다. 세브란스 병원의 설립자인 에비슨 박사의 회고록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어느 더운 여름날 영어를 할 줄 아는 한국 양반을 정동 구락부에 초대하여 테니스 시합을 구경시켰다. 경기를 마치고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나오는 한 미국인 선수가 이 경기가 재미있더냐고 이 양반에게 물었다. 아무런 소득없이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보고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으며 이처럼 힘들어 할 일이라면 왜 하인을 시키지 않는가 하고 오히려 반문을 했다.」

개화의 선구자 김옥균이 갑신정변 이전에 화동의 자기 집에 테니스 코트를 만들고 푸트 공사 부부와 애스톤 영국공사 내외를 초청해 시합을 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기록상 한국 테니스의 효시는 김옥균이랄 수 있다. 최초로 테니스를 한 여인은 1893년 왕립병원인 제중원의 간호사 지망생으로 전기 에비슨 박사를 찾아온 김 씨라는 과부일 것이다.

「이름을 물어도, 나이를 물어도, 남편과 헤어진 지 얼마나 되느냐고 물어도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으로 치마주름만 비틀며 대답하지 않고 그저 간호사가 되고 싶으냐고만 물으면 고개를 끄덕이던ㅡ」 이 김 씨에게 긴장을 풀어주고자 에비슨 박사는 테니스를 가르쳤다.

「영국에 술 취한 사람 수보다 프랑스에 폼을 하는 사람 수가 많다」할 정도로 중세 프랑스에서 라켓으로 공을 네트로 넘기며 겨루는 폼이 유행했었다. 앙리 4세는 빵집 주인과 폼을 겨뤄 패하자 빵값을 내린다고 공갈하여 재시합을 했을 만큼 상하 없이 폼을 즐겼다.

이 폼이 영국에 건너가 테니스로 발전했는데 귀족 스포츠로 온통 흰 모자,흰 셔츠,팬츠,스커트,흰 양말, 흰 운동화 아니고는 출장 못하게 하고 하층 계급이나 유색인종은 출장하지 못하게 했다. 이 같은 백인주의 전통 때문에 멀어져 있던 테니스에 한국인이 등정에 가능성을 발휘한 것은 오히려 해외에서보다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자료출처: 테니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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