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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체제'를 지탱해온 이념적 秘傳들

하마사 2011. 12. 22. 21:22

 

인민민주주의와 反종교주의, 개인숭배로 뭉친 김일성 체제… 主體 부르짖으면서도 중화제국 지키는 변방 기지 역할
北 이념의 허구성 꿰뚫어 보는 생각의 힘 길러야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1948년 수립된 김일성 체제는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한 이후에도 지금까지 북한의 지배 체제로 지속되고 있다. 2009년 개정된 북한 헌법은 북한을 '위대한 수령(首領) 김일성 동지의 사상과 영도를 구현한 주체의 나라'라고 규정하고 있다. 며칠 전 사망한 김정일은 1974년 후계자로 확정된 이후 무려 20년에 걸쳐 권력을 이양받았지만, 그 역시 끝까지 김일성에게 기대서 통치했다. 김일성 체제의 장기 지속을 뒷받침했던 이른바 '주체사상'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념적 조각이 합쳐진 것이다.

첫째, 인민민주주의. 정의와 진실도 '다수결'로 정해질 수 있다고 보는 인민민주주의는 원래 레닌이 만든 공산주의 국제연대 조직인 코민테른에 의해 창조된 것이다. 1917년 2월혁명으로 들어선 사회주의 정부를 무너뜨린 레닌은 코민테른을 통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명확히 구별하라고 교시했다. 그랬던 코민테른이 1930년대 이후 공산주의를 인민민주주의로 포장한 것은 지지 세력의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서였다. 마오쩌둥(毛澤東)의 신민주주의도 인민민주주의의 일종이었다.

인민민주주의는 인류 평등에 대한 이상을 내세워 봉건적 불평등에 찌든 인간 내면의 폭력성이 집단 광기로 분출하는 것을 정당화했다. 이런 폭력성으로 6000만명 이상이 죽어가던 2차세계대전 당시 대중을 동원하는 이념적 자원으로서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다. 이 이념의 끝자락에 한때는 중국공산당에서 활동했고, 1945년 하바로프스크 주둔 소련군 88여단의 대위 계급장을 달고 있다가 스탈린의 낙점을 받았던 33세의 김일성이 있었다.

둘째, 반(反)종교주의. 공산주의는 종교를 '인민의 아편'으로 규정하면서 반종교주의와 결합했다. 반종교주의는 단순한 무신론과는 다르다. 그것은 신(神)의 존재를 믿지 않는 차원이 아니라, 신에 대한 관념을 멸절(滅絶)시켜야만 인간이 정신적 노예 상태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본다. 러시아 공산주의가 반종교주의와 결합했던 이면에는 괴승(怪僧) 라스푸틴으로 대표되는 러시아정교의 일탈에 대한 반작용이 있었다.

그러나 종교의 빈자리를 메운 것은 수령에 대한 개인숭배였다. 그리고 종교적 교리·조직·의식(儀式) 등이 변용되었다. 일부 종교인은 레닌의 표현처럼 '쓸모 있는 얼간이들'로 이용되었다. 히틀러가 로마교황청과 손잡자 스탈린은 러시아정교와 결탁했다. 북한에도 광복 이후 김일성 체제를 위해 부역한 대표적 종교인으로 그의 외할아버지 강돈욱 목사의 6촌 동생인 강양욱 목사가 있었다. 그가 나중에 북한 부주석까지 될 수 있었던 것은 종교를 김일성 체제에 종속시킨 보상이었다.

셋째, 폐쇄적 민족주의. 김일성 체제는 '항일(抗日) 빨치산' 전통을 한껏 활용했다. 1970년대 초 김정일이 후계자로 낙점받는 과정에서도 항일 빨치산 세대를 기리는 영화와 연극 제작이 주효했다. 북한은 2차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한 결과 광복이 이루어진 것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김일성의 항일 무장투쟁을 중심에 놓고 가르친다. 종교가 박멸된 곳에서 이런 역사교육은 유사종교의 경전 같은 역할을 하게 되고, 김일성은 이스라엘의 모세 같은 인물로 추앙받게 된다.

그러나 김일성 세대의 민족주의는 소련공산주의에 입각한 것이었다. 1920년대부터 반제(反帝) 반공주의 대(對) 반제 공산주의의 노선 투쟁은 치열했다. 김구는 '백범일지'에서 당시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아버지를 대신 죽여주는 '살부계(殺父契)'라는 조직이 생겨났을 정도라고 기록했다. 김일성을 정점으로 하는 공산주의자들은 일왕 (日王) 히로히토를 '악(惡)의 축'으로 규정하면서도, 그와 유사한 개인숭배 체제를 만들어냈다. 광복 이후에는 '미제(美帝)와 그 괴뢰'가 외부의 적(敵)으로 설정되었다. 6·25전쟁도, 경제적 곤궁도 '그들의 탓'으로 돌리면서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는 수단으로 이용했다.

넷째, 중화(中華)주의. 북한은 역사적으로 1897년 독립한 대한제국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직도 관념적 중화 질서 속의 '조선'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북한은 '고구려의 자존심'을 지켜왔다고 자랑하지만, 중화제국의 지정학적 궤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중화제국 입장에서 김일성 체제는 변방을 지키는 전방 기지를 관리하기 위해 과히 나쁘지 않은 체제이다.

이제 김정일 사망에 즈음하여 김일성 체제에서 교육받았던 북한 동포들을 포용하고, 새로운 민족사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이런 이념적 허구성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생각의 힘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잘살아보세"에서 "부자 되세요"로 이어지는 경제적 우월 의식만으로는 부족하다. 또 그 정도로는 놀라운 속도로 경제 발전을 주도하고 있는 8000만 중국공산당을 능가할 수 없다. 경제 발전 덕분에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존재했기 때문에 경제 발전도 가능했다는 역사의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조선일보 아침논단, 2011/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