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기타자료

망국적 지역감정을 없애는 길

하마사 2011. 4. 21. 10:18

박지향 서울대 교수·서양사

고려 초까지 올라가는 지역감정
경상·충청·전라 명칭 바꾸고 '지역 정당'엔 지원 줄이는 등 모든 수단 동원해 보면 어떨까

오늘날 우리 사회를 좀먹는 폐단 가운데 으뜸은 단연 지역감정이라는 데 국민 모두가 동의할 것 같다. 그런데 이 망국적인 지역감정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개발 정책에서 유래한다는 견해가 압도적으로 많다. 물론 그 시대의 정책이 일정 부분 책임질 바가 있지만 지역감정은 실상 역사적으로 훨씬 더 오래된 것으로 적어도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태조 왕건은 '훈요십조(訓要十條)'에서 "차령 이남과 공주강 밖은 산수(山水)의 형세가 모두 배역(背逆)으로 향했다"며 전라도 지방의 인재를 등용하지 말 것을 유훈으로 남겼다. 견훤과의 힘든 싸움을 거쳐 간신히 고려를 창건한 왕건에게 후백제 땅은 아마 진저리 쳐지는 곳이었을 것이다. 이 유훈의 진위 여부에 대하여 최근 학계의 논란이 있지만 어쨌든 조선시대에는 진짜로 받아들여졌다.

조선시대 실학의 한 유파를 확립하여 다산 정약용에게 잇게 했다고 평가되는 성호(星湖) 이익(李瀷)도 왕건의 유훈을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언급하고 있다. 경기지방 출신인 성호는 학문적으로는 영남학파와 대칭적 위치에 있다고 평가되는데 '성호사설'에서 풍수지리설에 입각하여 영남을 찬양하고 호남을 비판했다. 그는 백두산에서 시작된 산맥이 영남에 이르러 버들가지가 되었는데 그렇기에 경상도는 거칠고 사나운 기운이 제거되고 냇물이 낱낱이 합류되어 기(氣)가 살아있는 덕분에 모든 물자가 번식하고 인재가 많이 양성되는 고장이라 했다. 그는 경상도를 "사대부의 고장 중 으뜸이고 우리나라 인재의 창고"라고 예찬한다.

반면 전라도 지역은 물이 모두 사방으로 흩어져 흘러가기 때문에 "머리가 사방으로 풀어 흩어진 것과 같아 형세를 이루지 못했으므로 재주와 덕망 있는 자가 드물게 나온다"고 판단했다. 문관과 무관의 공평한 등용을 주장하고 서자(庶子)에 대한 차별을 비판하는 등 상당히 합리적 사고를 한 이익이 유독 인성(人性)에 대한 판단에서는 풍수설에 의존해 전라도 출신을 폄훼한 것에 아연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지역적 편견과 갈등은 우리 역사에 면면히 이어져 왔다. 서울과 지방 사이의 견제와 의구심도 심했다. 서북지역은 조선시대 내내 차별정책에 시달렸기 때문에 서울에 대한 한(恨)이 컸는데 그 대립은 일제에 대한 민족저항 운동에서도 발견된다. 서북(西北)파가 "우리에게 일본은 지난 수십 년 동안의 적(敵)이지만 기호(畿湖)파는 수백 년 동안의 적"이라며 "기호파를 모두 없애고 나서 독립을 하자"고 부추겼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서북파가 그런 말을 했을 리 없지만 어쨌든 그런 소문이 돌 정도로 두 집단의 갈등은 심했다. 윤치호는 평양 출신의 사위를 본 후 자신이 서울의 명망가 가운데 평양 사위를 본 첫 번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갈등이 해방 후 남북의 분열로 이어진 측면을 간과할 수 없으며 통일 후에 다시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참으로 끔찍한 전망이다.

외국에도 물론 지역 갈등이 없지 않다. 일본에는 관동(關東)과 관서(關西)의 대립이 존재하고, 영국에도 잉글랜드와 주변부인 스코틀랜드·웨일스 사이의 차이가 확연하며, 이탈리아에도 남부와 북부의 구분이 감지된다. 그러나 우리처럼 매사에 서로 잡아먹을 듯이 적대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그들의 구분은 정치적이라기보다 문화적 측면이 강하다는 점에서 우리와 다르다.

그렇다면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 수백 년 거슬러 올라가는 기억을 없애려면 아예 경기·경상·충청·전라도 같은 명칭 자체를 바꾸어 버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음으로는 선거구와 행정구역을 마구 섞어버리는 방법이 있다. 나아가 각 지역 사람들이 경제적 필요성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거래하고 친교를 맺어야 하는 획기적이고 복합적인 경제구역을 구상할 수 있다. 서울과 지방을 연결하는 교통 인프라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부산~순천~목포를 잇고 대구~광주를 잇는 KTX 건설 같은 것도 필요하다. 그렇게 적극적으로 교류하다 보면 서로 혼인으로 어울리면서 언젠가는 일체감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무엇보다 어느 정당이 어느 지역에서만 당선자를 낼 경우 또는 어느 지역에서만 당선자를 내지 못할 경우 국고보조금을 과감하게 삭감하는 방안은 어떨지. 망국병(亡國病)인 지역감정을 없애려면 당장에는 황당해 보일 만큼 엉뚱할지라도 모든 접근법을 총동원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젠 정치력을 발동해서라도 고질적 지역감정의 해결을 시도하여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하나가 된 대한민국 국민으로 다시 태어나야 할 때다.

-조선일보 아침논단, 201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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