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행복과 희망

[사설] 김연아의 마법에 세계가 넋을 잃었다

하마사 2010. 2. 27. 10:22

4분 9초 동안 온 나라가 숨을 죽였다. 보는 사람들은 손에 땀이 나고 가슴이 쿵쾅거렸지만 스무살 김연아는 차분하고 우아하게 빙판을 누볐다. 여섯살 때 처음 피겨스케이트를 신은 이래 14년을 달려온 최종 목적지 올림픽 무대에서 김연아는 단 한 차례 실수도 없이 완벽한 연기를 펼쳤다. 날렵하게 솟구쳤다가 깃털인 양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예술이고 마법(魔法)이었다. 외신(外信)들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기"라고 찬탄한 그대로였다.

경기를 마친 직후엔 한 번도 운 적이 없던 여왕의 눈에도 기어이 눈물이 비쳤다. 승리를 스스로 확인하는 눈물이었다. 가녀린 두 어깨에 무겁게 지고 온 짐을 홀가분히 내려놓는 순간 온갖 감회(感懷)가 둑처럼 터지는 눈물이었다. 김연아는 "너무 기뻤고, 모든 게 다 끝났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고 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선수가 빙상의 꽃, 올림픽 여자 피겨스케이팅의 시상대 맨 윗자리에 오르리라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쟁쟁한 외국 스타들의 피겨 연기를 그저 다른 세상 사람들의 꿈 같은 이야기로 여겼다. 김연아는 그 꿈을 온전히 우리의 것, 우리의 현실로 펼쳐 보여줬다. 그 뒤엔 어린 소녀가 걸어온 길고 혹독한 행군의 길이 있었다. 김연아는 무릎과 허리부터 꼬리뼈, 고관절까지 온몸에 부상과 통증을 달고 살아야 했다. 열여섯살 때엔 허리 디스크 판정까지 받았다. 고비마다 침과 진통제의 힘을 빌려야 했다. 발에 맞는 부츠를 제때 구하지 못해 '부츠 노이로제'에 시달리다 은퇴를 고민한 적도 있었다.

피겨 불모지에서 김연아라는 대스타의 싹을 틔운 이가 어머니 박미희씨다. 박씨는 여섯살 딸의 재능을 알아보고 모든 시간과 노력을 딸에게 쏟아부었다. 점프와 착지(着地), 물리치료까지 혼자 공부해 뒷바라지했다. 모녀는 매일 밤 과천실내링크 직원들이 불을 꺼야 한다고 채근할 때까지 자정 넘도록 훈련했다. 어머니의 헌신과 딸의 의지(意志)에서 우리 민족 특유의 저력과 끈기를 본다.

온 국민이 김연아의 금메달을 믿고 기다렸기에 밴쿠버에서 김연아가 받은 중압감은 실로 엄청났을 것이다. 그러나 김연아는 스스로를 다스릴 줄 알았다. 타고난 재능과 성실함, 끊임없는 단련으로 올림픽을 준비해온 김연아는 온 국민에게 저릿한 감동을 안기며 '밴쿠버의 전설(傳說)'이 됐다. 대한민국이 행복한 하루였다.

 

2010/2/27, 조선일보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