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자신감을 업그레이드 시켜라" 로이스터가 말하는 '로이스터 리더십'
잔소리 하지 마라 간결하고 명쾌하게 말하라
숫자를 믿지 마라 숫자는 가능성을 왜곡한다
삼진을 당해도 칭찬해라 화는 단 한번만 내라
선수들이 주눅 들었을 때만
장원준 산업부 기자 wjjang@chosun.com
"간결하고 명쾌하게! (Simple and clear!)"
그는 주저 없이 이렇게 말했다. "훌륭한 리더로 호평받는 비결이 뭔가"를 묻는 질문을 받고는 1초도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좋은 리더는 메시지를 간결하고 명쾌하게 다듬어 반복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해야 한다"는 게 제론 케니스 로이스터(Royster·56), 약칭 제리 로이스터 롯데 자이언츠 감독의 설명이었다. 그는 화법(話法)부터 단문(短文) 위주였고, 목소리의 성량(聲量)과 고저(高低)도 듣는 사람의 귀를 편하게 했다. 당연히 전달력이 뛰어났다.
그는 매력이 넘쳤다. 지난 4일 낮에 만난 그에게 기자가 명함을 건네며 "내 이름이 롯데의 왼손 선발 투수와 똑같다"고 인사하자 "아 그러네, 장원준이군, 당신 이름은 점점 더 유명해질 테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조크를 던지며 손을 한 번 더 꽉 잡았다.
이 남자가 왜 '8888577'(지난 7년간 롯데가 꼴등인 8위를 연속 4번, 7위를 2번, 5등을 1번 했다는 내용을 담아 야구팬들이 만든 유행어) 팀을 올해 맡아 선수들의 신바람 속에 '기적적인 3위'를 일구고 한국 시리즈 제패를 향해 진군할 수 있었는지, 왜 부산 전체가 이 남자에게 그토록 환호하고 있는지 조금씩 짐작이 갔다.
- ▲ 지난 4일 낮 서울 잠실 롯데 호텔에서 만난 로이스터 감독은 롯데의 정규리그 3위가 이미 결정돼 이날 오후 경기의 승패가 별 의미가 없어지자 예정시간보다 길게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나는 선수들의 능력을 파악한 후 그들이 할 수 있는 것만 요구한다”,“ 야구든 비즈니스든 혼자 할 수 없고 조직원 모두가‘한 팀, 한 가족’이 돼야 한다”,“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희망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순간까지는 실패를 떠올리지 않는다”는 등의 답변을 명쾌한 화법으로 쏟아냈다.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간결·명쾌·반복의 커뮤니케이션
로이스터는 "한국에서는 통역을 거친다는 제약 때문에라도 나는 불가피하게 간결하고 명쾌한 지시를 내려야 하는데 이는 오히려 리더에게 긍정적 제약"이라며 "어떤 비즈니스에서도, 어떤 조직에서도 간결하고 명쾌하고 반복적인 커뮤니케이션은 매우 유익하다"고 단언했다.
로이스터 감독 스스로는 연구해본 대상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의 리더십은 잭 웰치(Welch) 전(前) GE 회장과 맥이 닿아 있었다. 단순함(simple)·자신감(self-confidence)·속도(speed)를 강조하는 잭 웰치는 "핵심 가치를 최소한 700번 이상 반복해서 부하들에게 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로이스터도 " '두려워 말라(No fear)', '공격적으로 임하라(Be aggressive), '한 팀이자 한 가족(One team, one family)', '네가 자랑스럽다', '너를 믿는다'처럼 간결한 메시지에 내 진심을 담아서 반복적으로 전달한다"고 말했다. 이래야 그를 따르는 선수들에게 변화와 자신감을 제대로 불어넣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올해 롯데 더그아웃의 화이트보드에는 'No fear!', 'Something new just for you!(너만을 위한 뭔가 새로운 것!)' 같은 '로이스터 경구(警句)'가 늘 적혀 있었고, 선수들 얼굴에서 주눅이나 공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세계적인 마케팅 거장 잭 트라웃(Trout)도 "마케팅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고객의 기억에 한 단어를 심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KISS(Keep It Simple, Stupid)'를 강조한다. '볼보=안전'이나 '도미노피자=배달' 등의 강인한 메시지는 단순화와 집중의 커뮤니케이션이 축적된 결과란 것이다.
강미은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저서에서 "메시지가 핵심만으로 구성돼 짧을수록, 쉬운 표현일수록 더 힘이 있다"며 "일상 생활이든, 연설이든, 광고든 한 줄의 설득력 있는 강펀치가 사람들 마음에 남아야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숫자의 함정과 타성에 빠지지 않는다
로이스터에게 "당신은 선수를 평가할 때 어떤 지표에 가장 비중을 두느냐"고 묻자 "나는 숫자나 통계를 보지 않고 선수를 본다"는, 매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타율·출루율·장타율에 평균자책점·삼진·다승까지,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가장 많은 통계와 숫자가 넘쳐나는 야구에서 지도자가 통계를 안 본다고?
그의 대답.
"숫자에는 함정이 있다. 1게임에 3안타를 쳤다는 기록만 보면 그 선수는 굉장히 잘한 것 같다. 하지만 빗맞은 공이 높은 바운드 덕분에 운 좋은 안타가 될 수 있다. 숫자에만 집착하면 이를 알아낼 수 없다. 나는 선수를 주시하고, 그들의 플레이를 관찰해 판단한다."
그의 또 다른 설명.
"올해 롯데의 실책 수가 작년보다 늘어났으니 수비가 나빠졌다고 보는 전문가가 있더라. 절대 그렇지 않다. 과거에는 수비 시도조차 하지 못해서 아예 손도 못 대던 어려운 타구를 이제는 수비수가 잡게 되니 송구 실수가 나오고 실책 수가 늘어난 것이다."
로이스터는 "수비 수준이 낮아진 것인가, 높아진 것인가"라고 물은 뒤 "당연히 높아진 것인데 숫자만 봤으면 낮아졌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고 결론지었다.
그의 말은 경영학과도 일맥상통한다. 최철규 세계경영연구원 부원장은 "기업에서도 '성과 측정 기준'은 중요한 이슈"라며 "성과를 특정 지표로만 평가하는 타성(惰性)에 빠지다 보면, 의도와 전혀 다른 부작용이나 왜곡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회사가 직원들의 성과를 매출액으로만 측정할 경우, 영업 부서는 월말이 다가오면 목표 매출을 달성하기 위해 덤핑과 밀어내기 영업을 하게 되고, 이는 기업의 브랜드 가치 훼손이라는 심각한 부작용으로 연결된다는 설명이다.
최 부원장은 "이런 '숫자의 함정'을 벗어나기 위해 'BSC (Balanced Score Card)' 같은 기준을 도입해 재무적 관점, 고객의 관점, 내부 프로세스의 관점, 학습과 성장의 관점 등을 종합해 균형 잡힌 성과 분석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롯데 야구단도 만약 '실책 수 줄이기'라는 수치적 목표에만 함몰됐다면, 수비수들의 소극적 플레이라는 부작용 탓에 포스트 시즌 진출이라는 성과 달성에 실패했을지 모른다.
'숫자의 함정' 극복은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에서도 유명한 신화를 낳았다. 1998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단장에 취임한 빌리 빈(Beane)은 2000년 이후 팀을 4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는 파란을 일궈냈다. 오클랜드 선수들의 당시 총 연봉은 4000만 달러 선으로, 뉴욕 양키스(약 2억 달러)의 20%에도 못 미쳤다. 이처럼 '없는 살림'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한 비결로 빌리 빈 단장의 독특한 타자 평가법이 꼽힌다. 그는 전통적 타자 측정법인 '타율(타자가 타격을 한 경우 중 안타를 친 비율)'을 '숫자의 함정'으로 간주해 믿지 않았고, '출루율(안타든 볼넷이든 진루에 성공한 비율)'과 '장타율(2루타·3루타·홈런을 단타의 2·3·4배로 가중치를 둬 타율을 조정한 수치)'을 합친 OPS라는 지표를 진정한 타자 성적표로 채택했다. 오클랜드의 기적은 여기서 나왔다는 분석이다.
■칭찬·믿음·감동의 리더십
롯데의 4번 타자 이대호 선수는 몸무게 100㎏이 넘는 거구여서 3루 수비가 불안하다는 지적에 시달렸다. 하지만 로이스터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너 같은 빅맨(big man)이 많지만 너처럼 유연하고 3루 수비를 잘하는 선수는 없다"며 "타격은 말할 것도 없이 최고"라고 칭찬했다. 반복되는 칭찬 속에 이대호 선수는 올해 한국의 올림픽 금메달과 롯데 포스트 시즌 진출의 1등 공신 반열에 올랐다. 로이스터는 또 에이스 손민한에게는 "단연 한국 최고의 투수이고, (미국의 전설적인 컨트롤 마법사) 그레그 매덕스 급이다"라고 격찬을 보낸다.
로이스터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주변에서 온통 롯데 선수들이 얼마나 못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만 들을 수 있었다"며 "한국에서는 선수를 로봇처럼 대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들은 칭찬하고 격려하면 신나서 잘하는 인간"이라고 말했다.
로이스터 감독은 선수들의 단점보다 장점을 보고, 칭찬과 믿음을 아끼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훈련량을 줄이고 자율성, 집중력, 효율성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가 호통을 치는 대상은 자신감 없는 플레이나 주눅 든 표정을 보이는 선수뿐이다. "자신감 결여, 즉 공포가 가장 나쁜 일"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모든 선수들에게 "한국에는 프로야구팀이 8개밖에 없는데 그 안에 속한 것은 너희가 아주 특별한 선수라는 의미"라고 칭찬한다. 삼진을 당하고 들어온 타자에게도 "상대 투수를 잘 괴롭혔다"고 박수 쳐주고, 번트를 실패해도 "다음에 잘하면 된다"고 격려한다.
그는 늘 "게임을 즐기라"고 선수들을 고무(鼓舞)한다. 한국에서는 이례적으로, 투수를 바꿀 때는 직접 마운드로 올라가 등을 토닥여 준다. 서정근 롯데 자이언츠 홍보팀장은 "로이스터 감독은 선수들 이름은 물론 가족 이름까지 외워 선수단에게 감동을 불러일으켰다"며 "선수들은 칭찬과 격려에 '롯데 선수인 것이 자랑스럽다'며 똘똘 뭉쳐 책임감과 자신감과 성적으로 보답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로이스터는 "올림픽에 앞서 나는 '한국 야구가 금메달을 딸 충분한 능력이 있으니 믿음을 갖고 기회를 주자'고 말했었다"며 "김경문 감독은 더 이상 잘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게 선 굵은 믿음의 야구를 펼쳐서 최고의 플레이를 이끌어냈다"고 '적장(敵將)'에게도 칭찬을 보냈다.
글로벌 컨설팅사인 올리버와이먼의 정호석 한국 대표는 "로이스터는 '상사(上司)나 주변의 관심과 주목을 받으면 더욱 분발하게 된다'는 '호손 효과(Hawthorne effect)'라든가, 이미 리더십의 대세를 이룬 '따뜻한 카리스마'를 생생하게 구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팬(fan)과 친해지고 현지와 친해져라
로이스터에게 "부산의 열성적 팬과 비교할 만한 미국의 팬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노! 노! 세계 어디에도 없다. 부산 팬이 세계 최고"라고 잘라 말했다. 그리고는 "방금 시카고 컵스와 LA 다저스의 디비전 시리즈를 TV로 보다가 내려왔는데, 그 유명한 시카고 컵스 팬들도 점수 차가 벌어지자 3회부터 야유를 보내더라. 부산에서는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따끈따끈한 예를 들었다. 이렇게 '설득력 있는 아부'를 접한 어느 팬이 이 감독을 싫어할까?
그는 지난달 28일 마지막 부산 홈 경기에서 허남식 부산시장과 함께 롯데의 대표적 응원가인 '부산 갈매기'를 가사까지 정확히 외우며 열창해 부산 팬들을 열광시켰다. '포스트 시즌 진출에 성공하면 노래 부르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이다. 로이스터는 불고기·갈비·볶음밥과 물김치 등 한국 음식과도 적극적으로 사귀고 있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로이스터는 '한국화(韓國化)', '부산화(釜山化)'에 박차를 가해 동화(同化)에 성공하면서 리더십의 탄력을 얻고 있다"며 "세계 곳곳에 지사를 운영하면서도 현지인과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경우가 많은 한국 기업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지적했다.
입력 : 2008.10.10 13:28 / 수정 : 2008.10.11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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