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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칼럼] 재계 5위 롯데그룹의 비밀에 싸인 正體性

하마사 2015. 8. 1. 12:43

한국 5위 재벌 그룹의 운명이 일본서 결정된다는 사실에 충격
불확실한 일본 지주회사들 정체 더 강해지는 오너들의 일본色
비밀스러운 정체성 못 바꾸면 영원히 국민 신뢰 못 얻는다

박정훈 부국장·디지털뉴스본부장 사진 

박정훈 부국장·디지털뉴스본부장

롯데가(家) '왕자의 난(亂)'이 처음 알려진 것은 일본 언론을 통해서였다. 지난 28일 오후 닛케이신문이 신격호 총괄회장의 해임극(劇)을 보도하면서 전말이 공개됐다. 그때까지 한국에서는 깜깜무소식이었다.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회가 열렸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으니 정말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았다.

일본 롯데홀딩스가 일본 법인이니 일본 쪽 정보량이 많은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에서 롯데그룹은 재계 순위 5위의 기업집단이다. 유통·식품·건설·석유화학에서 금융까지 한국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 재벌 총수 자리가 우리는 전혀 모르는 사이 반전을 거듭하며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었다. 대그룹의 운명이 서울 아닌 도쿄에서, 일본 법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이 착잡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롯데 껌을 씹고, 롯데리아 햄버거를 먹으며, 롯데마트에서 장을 보고, 롯데시네마에서 영화를 본다. 롯데그룹은 소비재 산업을 중심으로 계열사 79곳을 거느리고 있다. 롯데만큼 온 국민의 생활 속에서 친숙한 기업 브랜드는 없다.

하지만 지배 구조는 기업 이미지와 정반대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사람들은 롯데 오너십의 심층부가 그토록 베일에 가려 있다는 점에 충격받았다. 너무나 많은 것이 불투명해서 앞으로 누가 롯데그룹을 이끌지조차 알기 힘든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 1차전은 신동빈 회장의 승리였지만 앞으로 벌어질 지분 싸움의 승패는 예상조차 어렵다. 누가 얼마나 지분을 가졌는지 숨겨진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 미스터리의 한복판에 일본 '광윤사(光潤社)'가 있다. 종업원 3명의 이 작은 비상장 기업이 지배 구조의 맨 꼭대기에서 최상위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다. 롯데그룹의 지배권을 좌우할 핵심 기업이지만 광윤사의 소유 구조는 비밀에 부쳐져 있다. 일본 회사법상 비상장 기업은 지분 공개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엊그제 이사회에서 쿠데타가 벌어졌던 일본 롯데홀딩스 역시 지분 구조가 공개된 일이 없다. 이런저런 추정이 나오지만 신격호 회장과 두 아들의 지분이 얼마나 되는지 누구도 확실히 알지 못한다. 출자 고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일본 펀드 'L투자회사'도 미스터리투성이다. 이 펀드는 호텔롯데의 지분을 72%나 보유하고 있지만 실소유주가 누군지 알려지지 않았다. 정체불명 일본 펀드(L투자)와 비밀투성이 일본 기업(광윤사)이 롯데그룹의 지배 구조를 좌우하는 셈이다.

한국 롯데의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의 일본 측 지분율은 99%에 이른다. 롯데그룹의 운명이 전적으로 일본 쪽 주주들 의사에 달려 있는 구조다. 한국과 일본 롯데그룹은 각각 독자 경영을 한다고 돼 있지만 실체를 보면 일본 쪽이 한국 롯데를 지배하는 모양새다.

재계 5위 대재벌의 지배 구조가 이렇게 일본에 종속돼 있어도 될까. 롯데그룹의 사업 주력은 한국 쪽으로 옮겨 왔고 한국 롯데가 일본보다 20배 더 크다. 그런데도 일본 쪽에서 한국 롯데를 지배하는 모습은 아무리 보아도 정상적이지 않다.

롯데그룹 오너들의 정체성(正體性)도 불확실하긴 마찬가지다. 장남인 신동주 전 부회장은 일본에서 나서 자랐고 61세가 된 지금까지 일본에서만 활동했다. 성인이 된 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지만 국내엔 인맥도, 근거지도 없는 사실상 일본인이다. 만약 지분 싸움에서 신 전 부회장이 이긴다면 롯데그룹은 '일본계' 기업이 되는 걸까. 국민 정서가 어디까지 용납할 수 있을까.

차남인 신동빈 회장이 승계해도 정체성 문제는 남는다. 신 회장 역시 일본에서 자랐고 30대까지는 일본 국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군대도 안 다녀왔다. 신동빈 회장의 아내는 일본 재계 거물의 딸이다. 게다가 유력한 다음 후계자 후보인 신동빈 회장의 장남(29)은 아직껏 일본 국적을 유지하고 있고 일본 여성과 결혼했다. 롯데 오너가의 '일본색(色)'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이것을 국민에게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할 것인가.

신격호 회장 시대만 해도 국민은 롯데 일가(一家)의 정체성에 관대할 수 있었다. 신 회장은 울산에서 태어나 청소년기를 식민지 조선에서 보냈고, 가난한 모국에 거액을 투자했다. 그는 해마다 고향에서 마을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열었다. 그래서 신 회장이 아무리 일본 이름으로 활동해도 국민 정서는 그를 한국인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다음 세대는 다르다. 경영권 다툼을 벌이는 두 아들이 아버지와 같은 대접을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한국민은 롯데가의 기묘한 '신비주의'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광윤사며, 일본 롯데홀딩스 같은 의문투성이 지주회사의 정체를 명확하게 밝히라고 말이다. 승계 전쟁에서 장남과 차남 어느 쪽이 이긴다고 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비밀을 걷어내고 소유 구조를 투명하게 하지 않으면 롯데는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이것을 제대로 할 사람은 창업자 신격호 회장뿐인데,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조선일보, 2015/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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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볼썽사나운 롯데家 형제 다툼

 

사이좋은 시골 형제는 가을걷이한 볏섬을 똑같이 나누었다. 하지만 형은 갓 결혼한 아우네 살림살이를 염려해 한밤중 볏섬을 져다 아우 집에 쌓아 놓았다. 아우도 식구 많은 형을 걱정해 몰래 볏섬을 형의 집에 갖다 두었다. 이튿날 형과 아우는 각자 자기 집 볏섬이 전혀 줄지 않은 것에 놀랐다. 그날 밤 형과 아우는 다시 볏섬을 지고 서로의 집으로 향하다 중간에서 딱 마주쳤다. 형제는 그제야 볏섬의 높이가 왜 그대로였는지 알게 됐고, 부둥켜안았다.

형제간 우애를 강조한 전래동화는 1970년대 라면 광고에 사용되면서 큰 인기를 누렸다. ‘형님 먼저 아우 먼저’ 광고카피는 두고두고 회자됐다.

하지만 광고를 제작한 롯데공업 신춘호 대표는 광고와는 정반대로 형 신격호 롯데 회장과 크게 다투고 결별했다. 평소 동생의 라면사업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신격호 회장이 돌연 롯데 브랜드를 사용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롯데라면을 만들던 롯데공업은 농심으로 이름을 바꿨다. 롯데그룹 창업세대 오너 형제의 다툼은 아직 전통적 가치관이 대세였던 당시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까맣게 잊고 있던 이야기가 다시 생각난 것은 최근 롯데그룹 2세 형제의 경영권 싸움을 보면서다. 4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사업과 경영권을 놓고 형제가 다투는 롯데가(家)의 분위기는 크게 바뀌지 않은 듯하다. 부모 세대의 다툼을 보고 자란 자식들이 그대로 따라 하는 모양새다.

형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아버지(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를 설득해 빼앗긴 경영권 탈환을 시도했다. 동생 신동빈 롯데 회장은 이사회를 열어 아버지를 해임하고 형의 쿠데타를 진압했다. 형은 다시 현해탄을 건너와 동생의 해임을 결정한 아버지의 인사 지시서와 육성 녹음 파일을 공개하며 반격에 나섰다.

형제는 각자 50% 이상의 지분을 확보했다고 주장하고 있어,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은 결국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을 통해 최종 결론이 날 전망이다. 하지만 국내 5위의 유명 대기업 오너 2세 형제가 공개적으로 골육상쟁(骨肉相爭)하는 모습은 볼썽사납다.

롯데뿐만 아니라 국내 대기업 중에 오너 형제간 경영권 다툼이 있었던 사례는 많았다. 오너 2세가 경영권 다툼을 벌이는 이유는 승계절차와 재산분배가 불투명해 누가 물려받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연로한 창업주가 끝까지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고 있다면 최악이다.

고(故) 정주영 전 현대그룹 창업주는 생전에 불굴의 투지로 경제발전에 큰 업적을 남겼지만, 판단력이 흐려진 말년까지 후계구도를 명확하게 정하지 않아, 2세 형제들은 심각한 경영권 분쟁을 벌였다. 롯데그룹 형제의 다툼도 창업주인 신격호 회장이 93세의 고령에도 대표이사를 유지하며 제때 후계 자리를 확정하지 않아 벌어졌다.

스웨덴 GDP(국내 총생산)의 30%를 담당하는 발렌베리그룹은 대주주 일가 중에 능력이 검증된 소수만 지주회사 경영에 참여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1856년 창업 이래 5대째 경영권을 이어가고 있다. 근래에는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처럼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을 만들고서도 경영권을 가족 대신 전문경영인에게 넘기는 창업주들이 적지 않다.

기업 역사가 짧은 한국에서 선진국의 기업 승계 문화를 기대하는 것은 시기상조일 수 있다. 하지만 2세에게 물려주든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든 일찌감치 후계자를 선정하고 승계절차를 진행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오너 2세들은 자기 몫까지 나눠주는 ‘볏섬 형제’의 우애를 발휘하진 못하더라도, 돈 앞에선 형제 부모도 저버리는 패륜은 이제 그만둘 때가 됐다.

 

-조선일보, 2015/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