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역사/한국교회역사탐방

[국민일보 선정 아름다운 교회길] (18) 서울 부암동 삼애교회

하마사 2014. 3. 11. 17:54


한국교회 성장기·권위주의 시대… 상처가 풍경되다

‘풍경과 상처’. 소설가 김훈의 기행산문집 제목이다. 모든 풍경은 상처의 풍경일 뿐이다. 그러기에 상처가 꼬들꼬들해질 때까지 삶을 견뎌내야 한다. 크리스천은 어쩌면 상처가 더 깊어 치유의 은사를 간절히 바랄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치유하는 예수님 손에 이끌려 풍경이 되고자 기도한다.

서울 부암동 삼애교회는 한국 교회 성장기의 혼란 그리고 한국 현대사의 권력욕이 교회당이라는 공간 안에 ‘이야기’로 남아 있는 절묘한 곳이다. 1964년 여름 청와대가 보이는 인왕산 줄기에 ‘하나님· 자연·이웃’을 내건 삼애교회가 세워졌다. 61년 소위 5·16 정변으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다. 그 무렵 보릿고개를 넘기 힘들었던 농민은 ‘무작정 상경’을 하기 시작했다. 62년 군사정권이 야심차게 내놓은 경제개발5개년계획으로 일자리가 많아지면서 이농이 늘 수밖에 없었다.

이농민은 도시 빈민이 되어 국공유지 산자락 등에 무허가 판잣집을 지어 정착했다. 부암동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부암동은 지금도 ‘도심 속 오지’로 불리는 곳이다. 최근까지 그린벨트 지역으로 묶여 빗물막이 하나 다는 것까지 제한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식생이 그대로 살아 올레길을 즐기는 사람들의 명소가 됐다. 세검정, 안평대군의 산정(山亭) 무계정사, 흥선대원군의 별장 석파정, 작가 이광수 별장 및 현진건 집터 등의 유적이 산수가 아름다운 동네임을 말해준다.

삼애교회. 18세기 강희언의 ‘인왕산도’ 작품을 보고도 교회 위치를 찍을 수 있는 절경의 교회당이다. 그 무렵의 또 다른 그림인 정선의 ‘인왕제색도’에서도 위치 짐작이 가능하다. 사실성이 뛰어난 ‘인왕산도’를 놓고 보자면 그림 오른쪽 가장자리에 창의문(자하문)이 있고 그 왼쪽 성곽 위로 십자가 불빛이 자그맣게 빛난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교회는 차남진(1915∼1979) 목사와 유앵손(훗날 목사·작고) 집사 등이 참여해 설립됐다. 서울 충현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던 유 집사와 몇몇이 당시 수도여사대(현 세종대) 학생교회 담임을 하고 있던 차 목사와 뜻을 같이해 ‘삼애’의 기치를 내건 것. 차 목사는 그 무렵 대학생선교회(CCC) 설립자 김준곤 목사와 함께 대학생 선교를 시작, 양축이 되어 캠퍼스에 성령의 새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차 목사는 호남 쪽 보수 신앙의 대표적 인물로 삼애교회를 세움으로써 호남에 뿌리를 둔 대한예수교장로회 개혁 측의 서울 첫 교회가 되었다는 것이 차 목사의 전기를 쓴 김남식 박사(한국상담선교연구원)의 설명이다. 차 목사는 일제 강점기 친구에게 보낸 ‘주님의 종으로 살자’는 내용의 편지가 일경에 발각돼 신사참배 반대자로 엮여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CCC 간사, 총신대 교수 등을 역임한 그는 천재, 기인, 부흥사로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한편 유 집사 등 일부 교인이 서울 충현교회 내부 문제를 이유로 반발한 사건도 이 교회 설립 배경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현 삼애교회 조경삼 목사는 유앵손 집사에 대해 “교회 섬기기를 그 누구보다 열심이었으며 차 목사님과 함께 수감 간첩 및 ‘살인마 고재봉’ 등 재소자 선교에도 앞장선 분이었다”며 “모 사학재단 이사장의 딸이었던 유 집사는 부암동에 살며 삼애교회 설립은 물론 CCC 현 부암동 본부 땅 기증, 한동대 재산 기증 등으로 물질 사역을 많이 했다”고 덧붙였다.

유 집사는 66년 대한어머니회가 주관하는 ‘훌륭한 어머니상’을 받기도 했다. 당시 신문은 ‘간첩교화’ ‘시온고아원 설립’ ‘밀양 신생원 나환자 후원’ 등의 공헌을 했다고 보도했다. ‘훌륭한 어머니상’ 시상 행사를 계기로 영부인이었던 육영수 여사가 덕수궁 안에 ‘어머니헌장탑’을 제막했다. 이 탑은 87년 사직공원으로 이전됐다.

조 목사는 “당시 부암동에는 이렇다 할 교회가 없었는데 우리 교회가 생기고 난 뒤 가난한 이웃들이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며 “산 아래 광화문을 중심으로 한 전통 있는 교회는 이곳 판자촌 사람들이 낯설어했다”고 말했다. 조 목사는 79년 부임했다.

삼애교회는 고 김의환 박사(총신대 총장)와 문오장(배우 겸 목사) 김영욱(아세아연합신대 총장) 홍정이(서울 안디옥교회 목사) 정정숙(전 총신대 교수) 등이 활동하며 성장했다. 설립 몇 년이 안 돼 150여명의 교인이 출석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80년대 한국 사회를 흔들었던 ‘김철호 장영자 사건’의 두 사람도 이 교회에 출석했다. 영화배우 양동근은 주일학교 출신이다.

하지만 교회 아래 청와대는 신앙생활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제3특별구역’으로 불릴 정도로 규제가 따랐다. 교회 성장세가 꺾인 것은 68년 무장공비가 청와대를 습격한 ‘김신조 사건’ 때문. 교회 건너편 북악산까지 침투한 공비에 놀란 청와대가 교회 주변 무허가 건물을 강제 철거하고 주민을 서울 양천구 신정동 신월동 등지로 이주시키면서다. 이때 교인이 정든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떠난 자리에 69년 개발의 상징인 청운아파트 11동 557가구가 세워져 전도에 활기를 띠었으나 이마저 2005년 철거되면서 교회는 수양관처럼 한적하게 됐다. 또 개혁 측 교권 갈등 여파도 한몫 했다. 어쨌거나 교회의 내홍은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러나 고린도서 말씀처럼 복음 전도자로서의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를 고통을 통해 알려주는 하나님의 방법이기도 하다. 상처가 풍경이 되는 이유다.

에피소드도 적잖다. 청와대가 가깝다 보니 교회 마당에서 교제를 하다가도 ‘높은 분이 뜨면’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 밖을 내다보지 말아야 했던 것. 조 목사는 “전두환 대통령 시절 대통령이 청와대를 들고 나면 주민은 하던 일을 멈추고 집안으로 들어가야 했다”고 회고했다. 권위주의 시대였다.

83년 2월 25일 미그기를 몰고 북한에서 귀순한 ‘이웅평 사건’ 때는 예배당이 곡사포 유탄을 맞기도 했다. 교회 뒤쪽 포대에서 미그기를 향해 쏜 유탄이 지붕에 떨어져 수리를 해야 할 정도로 피해를 보았던 것.

그럼에도 도심 속 전원교회는 새와 다람쥐, 능금과 살구 등이 지천이어서 디지털카메라를 든 젊은 순례객의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인왕산도’나 ‘인왕제색도’에서 느낄 수 있는 수묵의 깊은 운치가 교회와 교회로 오르는 골목길에 배어 있다. ‘인왕교회도(仁王敎會圖)’로 불릴 만큼 풍경이 아름답다.

■ 삼애교회 가는 길

서울 경복궁역 3번 출구를 나와 지선버스 1020번, 7022번, 7212번을 타고 ‘자하문고개(윤동주시인언덕)’에서 하차하면 된다. 내리면 창의문이 보인다. 인왕산 쪽을 바라보면 언덕배기에 교회가 한눈에 보인다. 교회까지 차 진입이 불가능하다. 창의문 3길 등을 이용해야 하는데 자칫 골목을 헤맬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을 되돌린 골목여행도 교회길의 백미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333-12 삼애교회(02-395-8663).

■ 근처 맛집 - 수제 초콜릿 전문 카페 ‘모노스’

문화나들이 코스로 사랑받고 있는 도성 밖 동네 서울 부암동. 1960∼70년대 비탈진 골목길 풍경을 감상하다가 적당히 피곤하다 싶으면 들러볼 만한 카페가 있다. 부암동주민센터 인근의 수제 초콜릿 전문 카페 ‘모노스’가 그곳(02-391-1109).

아담한 문을 열고 들어서면 팝의 선율이 초콜릿 향을 따라 잔잔히 혹은 경쾌하게 흐른다. 유리문 밖 정원에는 담쟁이 넝쿨 아래로 이름 모를 야생화가 크고 작은 항아리와 바구니 혹은 맷돌 곁에 함초롬히 피어 있다. 실내와는 다른 새들의 지저귐, 코끝에 와 닿는 풀내음, 산골을 타고 내려온 신선한 공기가 도시를 한껏 벗어난 느낌이다.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카페 운영자는 튼실한 팔뚝의 잘생긴 두 남자인데 이들의 본 직업은 제품디자이너다. 주인 김태원씨는 물방울 가습기를 개발해 국제디자인공모전에서 ‘굿 디자인(Good Design)’으로 선정되는 등 이 계통에서는 알아주는 실력파. 후배 안선웅씨는 그가 좋아 무조건 따라 나선 케이스다.

카페 한쪽 모퉁이가 이들의 작업 공간. 이 집의 초콜릿 포장케이스도 직접 디자인했다. 김씨는 달콤하고도 쌉싸래한 초콜릿 맛에 반해 유명한 초콜릿 공방에서 반년, 자신의 공방에서 반년의 수련과정을 거쳐 지난 3월 이곳에 개업했다.

쇼케이스에 진열된 다양한 형태의 초콜릿 한편의 크림치즈 머핀, 초코브라우니도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린다. 초콜릿 덩어리를 직접 녹여 만든 핫초코는 맛과 향이 깊고 진하다. 주문 제작도 가능하다. 수요일은 쉰다. 부암동주민센터에서 ‘창의문로 5길’ 간판을 따라 2∼3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된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269-4. 초콜릿은 개당 1500원. 커피 4000∼5000원. 머핀 3500∼4000원.

글 전정희 기자·사진 곽경근 선임기자 jhjeon@kmib.co.kr

-국민일보, 2011/7/6